1886년에 나온 톨스토이의 중편 소설 <이반일리치의 죽음>입니다.
19세기에, 게다가 러시아의 이야기입니다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와 다를 것 없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위대한' 작품이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사람의 마음에 흔적을 남기는구나 하고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I. 작가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Граф Лев Никола́евич Толсто́й 1828년 9월 9일 ~ 1910년 11월 20일)은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시인, 개혁가, 사상가이다. 사실주의 문학의 대가였으며 세계에서 제일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전쟁과 평화》(1869년), 《안나 카레니나》(1877년)가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러시아 문학과 정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II. <이반 일리치의 죽음>
<안나 카레니나>를 쓰고 있던 해에(1873년부터 1877년까지.1878년 단행본으로 출간) 톨스토이는 갑자기 인생의 의미와 목적이 무엇이냐 하는 의문에 사로잡혔다.
종교와 일치하는 삶에 강한 열정을 느낀 톨스토이는 재산과 영지를 포기하고 스스로 농부처럼 일하는 금욕적인 삶을 선택했다.
부인 소피야는 농민으로 돌아가겠다는 톨스토이의 폭탄선언을 듣자 톨스토이와 대판 다투고 만다. 톨스토이는 1881년 이전에 쓴 모든 소설의 저작권을 소피야에게 양도했지만 소피야의 화는 풀리지 않았다.
톨스토이는 <이반 일리치의 죽음>(1886)을 시작으로 다시 소설 쓰기로 돌아갔으며, 이 작품을 읽고 표트르 차이콥스키는 "톨스토이는 동서양 최대의 작가"로 극찬했다고 한다.
1.
이반 일리치의 죽음과 장례식.
지인들이 나누는 대화 등을 들어보면 그의 존재감은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으며 그의 장례 절차 때문에 귀찮은 기색과 함께 그의 죽음 이후에 자신에게 발생될 이익에 대해서 생각한다.
"사정이 이러했기 때문에 사무실에 모여 있던 이 고위급 인사들이 이반 일리치의 사망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올린 생각은 이 죽음으로 인해 발생할 자신과 동료들의 자리 이동이나 승진에 대한 것이었다."
"그런 생각 중에서도 고인과 아주 가까운 사이였던 이른바 이반 일리치의 친구라는 사람들이 또 생각한 것이라고는 이제 예의상 어쩔 수 없이 추도식에 참여해서 미망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하는 등 아주 귀찮은 의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다는 떨떠름한 사실이었다."
이반 일리치의 ‘친한’ 지인인 뾰뜨르 이바노비치는 장례식에 참석하지만 그에게서는 깊은 슬픔이나 애도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다른 지인인 시바르쯔에게서도 느껴진다.
"그건 '이반 일리치는 참 바보처럼 살다 갔네요. 당신이나 나하고는 다르게 말이죠'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시바르쯔는 내려오지 않고 그대로 위쪽 계단에 멈춰서 있었다. (중략) 오늘 밤 카드놀이 할 장소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 것이 분명했다."
이러한 태도는 지인뿐 아니라 이반 일리치의 부인인 쁘라스꼬비야 표도로브나에게서도 느껴진다.
"(이런 구체적인 사실들을 통해 뾰뜨르가 알 수 있었던 이반 일리치의 고통이란 것은 실제 이반 일리치가 겪은 고통이 아니라 그 고통이 쁘라스꼬비야 표도로브나의 신경을 얼마나 자극했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녀가 다시 입을 열어 이야기하면서 정작 그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남편이 사망한 경우에 국고에서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장례식장을 빠져나오는 뾰뜨르 이바노비치는 착잡하다거나 우울하다는 심정은 없고 할 일을 다 끝냈다는 홀가분한 기분이다.
"뾰뜨르 이바노비치는 향냄새와 시신 냄새 그리고 석탄산 냄새에 젖었다가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자 이제 살 것 같았다."
2.
이반 일리치의 순탄하게 자라고 결혼하고 사회 활동을 하는 장면들이다. 1장의 내용을 읽으면서 이반 일리치는 타인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고독하고 이기적이며 독선적인 인물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는 가족들에게서 사랑을 받은 아이였다.
"이반 일리치는 말 그대로 '집안의 자랑거리'였다."
그리고 그는 사교적이며 선량하고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법률학교를 다닐 때부터 그는 이미 평생 변치 않을 그런 성품을 보여주었다. 능력있고, 밝고 선량하며 사교적이면서도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서만큼은 철저히 해내는 그런 성품이었던 것이다."
"예심판사로서 이반 일리치는 전임지에서 특별보좌관으로 일할 때와 마찬가지로 공과 사를 구별할 줄 알고 모범적이고 예의 바르게 처신했기 때문에 곧 모두의 존경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혼은,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괜찮은 조건의 참한 여자’와 만나서 하게 되었다.
"이반 일리치가 결혼하게 된 것은 두가지 사항을 고려해서였다. 우선 쁘라스꼬비야 표도로브나와 같은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게 되어 자만심이 채워졌고, 동시에 고위층 사람들이 옳다고 하는 일을 행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후 결혼 생활은 항상 행복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갈등을 피해가려는 노력을 하며 일에 파묻히는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 이반 일리치는 결혼생활에 대해 자기 나름의 태도를 확립했다. 그는 가정생활에서 아내가 해줄 수 있는 것으로 따뜻한 식사와 집안 관리, 잠자리 등 딱 세가지 편의사항만을 기대하기로 했다. 중요한 것은 남들이 보기에 겉으로나마 가정의 품격을 잘 지켜가는 것이었다."
"아이들도 계속 태어났다. 아내는 더욱 불평을 입에 달고 살았고 화내는 일도 더욱 잦았다.
(중략)
쁘라스꼬비야 표도로브나는 새로 이사 간 곳에서 좋지 않은 일이 생길 때마다 남편을 탓했다. 남편과 아내 사이의 대부분의 대화들, 특히 아이들 양육을 둘러싼 대화는 언제나 과거의 다툼을 떠올리게 만드는 문제들로 이어지고, 결국 그런 논쟁은 순식간에 새로운 싸움으로 번져가게 마련이었다. (중략) 그는 가족과 지내는 시간을 점점 더 줄여나갔고 함께 있어야 할 경우에도 가급적 다른 사람들을 불러 함께 있음으로써 자신을 지키고자 했다. (중략) 그는 일 속에 파묻혀 오직 거기서 삶의 재미를 느꼈다."
3.
이반 일리치는 직업에서 역경을 겪으나 곧 성공의 황금기를 보내기 시작한다.
"그것은 1880년의 일이었다. 그해는 이반 일리치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 곱뻬라는 동료에게 수석판사직을 뺏김. 빠듯한 봉급. 모두에게 버림 받았다는 소외감. 아내의 불평불만. 분수에 넘친 생활로 인한 부채의 증가
"이반 일리치는 이런 인사이동 덕분에 자신의 동료들보다 두 단계나 더 높게 승진하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보직을 받아 연봉 5000루블에 이사비용까지 3500루블을 보장받으면서 예전에 근무하던 부서로 부임하게 되었다."
"공적 업무에서 느끼는 기쁨은 자존심을 세워주었고 사교계 생활에서의 기쁨은 허영심을 채워주었다.
(중략)
그들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최고 상류사회에 속해 있었고 지체 높은 사람들은 물론 젊은 사람들도 그들 집에 드나들었다."
4.
이반 일리치는 병에 걸려 고통을 받기 시작하지만 그의 가족은 그의 고통을 이해해주지 못하고 갈등을 겪는다.
"그리고 상태가 점점 악화되면서 이반 일리치가 늘 불쾌한 기분으로 인상을 쓰다보니 집안에 형성되어 있던 가벼운 기쁨과 품위있는 생활의 분위기가 마침내 위협받기에 이르렀다."
"사실 이제 싸움의 원인은 늘 이반 일리치로부터 비롯되었다."
그의 아내는 이반 일리치가 싫고 혐오스럽지만 그에게서 비롯되는 경제적 혜택으로 인해 누리는 사치스러운 생활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녀는 남편이 빨리 죽어버리기라도 했으면 하는 마음까지 들었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길 바랄 수는 없었다. 남편이 죽으면 봉급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본인은 고통스럽지만 타인들은 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에 가족과 동료들은 그의 음울하고 까다로운 태도를 탓하며 화를 내고 거리를 둔다.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기에 이반 일리치는 고독하다.
"집안 식구들, 특히 당시 사교계에서 한창 절정을 구가하고 있던 아내와 딸은 그의 고통을 알아주기는커녕 왜 그렇게 음울하고 까다롭게 구는지 화내며 그를 탓하는 것이었다.
(중략)
법원에서도 이반 일리치는 자신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조금 이상해졌다는 걸 알았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소설은 톨스토이가 그의 아내 소피야와 갈등이 있었던 시기에 나온 작품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인생의 의미에 대해 회심回心을 하며 삶의 목적을 새롭게 가진 톨스토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의 저작권과 재산에 대해서 욕심을 부리는 소피야에게 느끼는 감정들이 이 내용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5.
이제 이반 일리치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인식하기 시작하고 공포를 느끼기 시작하며 역시나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제는 증오마저 느낀다.
'죽음, 그래 죽음이다. 그런데 저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고 불쌍히 여기지도 않는구나. 그저 즐겁게 놀기나 하는구나.'
"아내가 그에게 입 맞출 때 그는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아내를 증오했으며 그녀를 확 밀쳐버리고 싶은 충동이 솟아오르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6.
죽음의 공포는 계속되고 점점 더 두려워진다.
"그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차단해주던 이전의 사고방식으로 돌아가려고 애썼다. 하지만 이상했다. 이전에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그를 지켜주고 숨겨주고 감싸주던 모든 생각들이 이젠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죽음 전혀 비켜나지 않고 정면으로 버티고 서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몸이 차갑게 굳으며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는 다시 자신에게 '정녕 죽음만이 해답이란 말인가' 하고 자문했다."
"죽음과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지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죽음을 바라보며 두려움에 젖어들 뿐이었다."
7.
모든 사람들이 이반 일리치를 불편하게 생각하며 ‘언제 세상을 떠날까’만 생각하는데 이러한 이반 일리치의 고통을 이해하고 안타까워하는 게라심으로 인해 위안을 가진다.
"하지만 이제 모든 사람들의 관심은 오직 하나, 언제 그가 저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어 세상을 떠날 것인지, 그리고 언제 환자를 지켜보는 이 불편하고 갑갑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불쾌하고 견디기 힘든 가운데에서도 위안거리가 있었다. 배설물을 치우기 위해 게라심이 늘 찾아왔던 것이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게라심이 그의 다리를 들고 있는 동안은 몸이 훨씬 좋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때부터 이반 일리치는 종종 게라심을 불러 그의 어깨에 다리를 올려놓고 같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의 상태를 진정으로 이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그의 상태를 이해하고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사람은 오직 게라심뿐이었다."
톨스토이와 그의 아내 소피야와의 갈등이 심한 시기에 소피야는 특히 톨스토이의 추종자인 블라디미르 체르트코프와 사이가 나빴다고 한다. 블라디미르 체르트코프는 1883년 10월에 모스크바에서 처음 톨스토이와 만나서 톨스토이의 주도에 따라 1885년에 예술의 출판과 문학의 도덕화를 위한 출판사를 조직하였으며, 톨스토이는 모든 저작권과 판매료를 사회에 환원하고자 하였다.
아마도 게라심이라는 인물은 블라디미르 체르트코프를 톨스토이가 작품 속에 넣은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8.
자신을 이해해주는 게라심과는 달리 가족과의 거짓된 관계를 느끼며 갈등과 괴리감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이반 일리치는 아내를 바라보며 그녀의 몸 전체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하얀 피부, 포동포동한 몸, 깨끗한 팔과 목, 매끈하게 윤기가 흐르는 머릿결, 생기가 넘치며 반짝이는 두 눈, 그는 아내의 모든 것을 질책하듯 바라보았다. 그는 영혼의 있는 힘을 모두 쥐어짜 아내를 증오했다. 아내의 몸이 조금만 닿아도 아내에 대한 증오심이 끓어오르며 견딜 수 없이 괴로웠다."
"그녀가 남편의 병에 대한 태도는 의사가 하라는 대로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책임은 남편에게 있다, 그런데 자신은 그런 남편을 사랑하며 어떻게든 잘되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런 태도에서 한번도 벗어난 적이 없었다."
"이반 일리치는 두 눈을 번뜩이며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뭔가 못마땅해서 몸시 화난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수습해야 했지만 도무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우선 이 어색한 침묵으로부터 벗어나야 했다. 하지만 아무도 감히 나서지 못했다. 겉으로 품위를 지키려는 거짓된 분위기가 깨져서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이 명명백백하게 눈앞에 드러나는 것이 모두에게 너무 두려웠던 것이다."
"모두들 떠나자 이반 일리치는 훨씬 편안해진 느낌이었다. 거짓말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9.
이반 일리치는 계속된 고통 속에서 내면의 소리를 듣게 되고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 보며 반성을 한다.
"'도대체 왜 제게 이런 고통을 주시나요? 왜 저를 이렇게까지 고통스럽게 만드는 겁니까? 왜, 도대체 왜 절 이렇게까지 괴롭힌단 말입니까?'
(중략)
그러다가 그는 조용해졌다. 울음도 그치고 죽은 듯이 숨도 멈춘 채 정신을 집중했다. 그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영혼의 목소리,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생각의 흐름에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영혼 : 네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이반 : 무엇이 필요하냐고? 더이상 고통받지 않는 것, 그리고 사는 것.
영혼 : 사는 거라고? 어떻게 사는 거 말이냐?
이반 : 전에 살던 것처럼 그렇게 사는 것이지, 기쁘고 즐겁게.
영혼 : 전에 어떻게 살았었는데? 그렇게 기쁘고 즐거웠나?
"그는 기억 속에서 이전에 즐거웠던 삶의 순간들을 하나씩 떠올려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예전에 좋았던 그 모든 순간들이 이제는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중략)
어린 시절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리고 현재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기뻤던 일들은 더욱더 덧없고 의심스러운 것으로 변했다."
: '어쩌면 내가 잘못 살아온 건 아닐까?‘
"결국 자신이 제대로 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찾아들었지만 그는 즉시 자신의 삶은 올바르고 정당했다고 강변하며 그 이상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털어내버렸다."
10.
이반 일리치는 내면의 소리와 대화를 나누면서 계속 지난 삶을 되돌아본다. 그리고 서서히 자신의 죽음에 대해 받아 들인다.
"이게 뭐야? 정말로 내가 죽는단 말인가? 그의 내면의 목소리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 이젠 정말이야. 왜 이럼 고통을 내각 겪어야 하지? 그러면 또 내면의 목소리가 대답했다. 그냥 그런거야. 이유는 없어."
"등받이에 얼굴을 묻고 소파에 누워 지내는 요즈음 이반 일리치는 고통스럽게 고독을 견디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 한복판에서, 많고 많은 친구들과 가깝디가까운 가족들 곁에서 느껴야 하는 고독함, 그것은 그 어디에서도, 바다 저 깊은 바닥에서도, 땅속 깊은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처절한 고독이었다."
"이런 오랜 옛 추억과 더불어 병이 나서 악화되었던 기억이 다시 또 겹쳐서 떠올랐다. 지금 현재로부터 멀어질수록 더욱 생명이 충만했던 시절이었다. 삶 속에 선량함도 훨씬 더 많았고 삶 그 자체도 훨씬 더 풍요로웠다. 그런데 이제 두가지 생각이 하나로 뒤섞이기 시작했다.
'갈수록 고통이 더욱더 심해지듯이 내 삶의 모든 것은 더욱더 나빠져만 갔군.'"
'하지만 왜인지, 왜 내가 이렇게 되었는지 그 이유는 알아야 하는 거 아닐까? 그것도 불가능하다.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았다고 한다면 설명이 가능하겠지. 하지만 그것만은 절대 인정할 수 없어.'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어! 고통과 죽음......도대체 왜?'
11.
이반 일리치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의심하고 그의 생각과 행동들에 대해 증오하고 부정하게 된다.
"그의 정신적 고통은 전날 밤, 광대뼈가 불거진, 게라심의 졸음이 가득한 선량한 얼굴을 바라보다가 불현듯 떠오른, 만약에 정말로 내가 살아온 모든 삶이, 내 생각과 행동이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런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하지? 하는 의심이 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똑바로 누워 완전히 새로운 시각에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그게 아니야. 네가 살며 의지해왔던 모든 것은 다 거짓이고 기만이야. 너에게 삶과 죽음을 숨기고 있을 뿐이야.' 이런 생각이 들자마자 증오심이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12.
삶의 마지막 날에, 이반 일리치는 자신은 올바르게 살아왔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고통을 가족에 대한 증오로 나타내는 이기적 태도를 가지다 가족들에 대한 연민과 동정을 느끼게 되며 ’불쌍하다‘고 느끼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죽음에 대한 공포가 그를 떠나가고 죽음 자체가 사라진다.
"김나지움에 다니는 아들이 살금살금 아버지 침대 곁으로 다가왔다. (중략) 아들은 아버지의 손을 잡아 입술에 대고 울음을 터뜨렸다.
바로 그 순간 이반 일리치는 구멍 속으로 굴러떨어졌고 빛을 보았다."
: 아들이 너무나 안쓰러웠다.
아내도 불쌍했다.
그는 '쁘로스찌'(용서해줘)라고 한마디 더 덧붙이고 싶었지만 '쁘로뿌스찌'(보내줘)라고 말하고 말았다.
이반 일리치를 동정하는 인물이 게라심과 ’아들‘인데, 톨스토이도 가족 중에서 자신을 이해해주는 인물은 56세 얻은 막내딸 알렉산드라뿐이었다 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판권 전부를 알렉산드라에게 물려주겠다는 새로운 유언장을 작성했으며 80이 넘어가는 늘그막에 농민과 같은 삶을 살겠다며 가출을 떠날 때에 알렉산드라와 함께 했다고 한다.
"가족들이 모두 안쓰럽게 여겨지고 모두의 마음이 아프지 않도록 해주고 싶었다. 이 모든 고통으로부터 자신도 벗어나고 가족들도 다 벗어나게 해주어야 했다."
"그는 오랫동안 곁에서 떠나지 않던 죽음의 공포를 찾으려 했으나 찾을 수 없었다."
: 죽음이란 것은 없었기 때문에 이제 그 어떤 공포도 있을 수 없었다.
죽음 대신 빛이 있었다.
끝난 건 죽음이야.
이제 더이상 죽음은 존재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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