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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대화편> 중에서, <소크라테스의 변명>. 박문재 옮김. 현대지성 출판.

by 동콩 2021. 9. 24.

 

예전부터 플라톤의 <대화편>을 읽어보고 싶었지만 기회가 닿지 않았는데 이번에 책을 구입하여서 읽기 시작하였다.

사실 이 <대화편>은 꽤 방대한 양이지만 이번에 구입한 책은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파이돈>, <향연>이 수록되어 있다.

 

석가모니가 위대한 이유는 무엇일까? 예수는? 공자는 어떤가? 이 소크라테스까지.

그들에게는 스승의 뜻을 잘 이어 받은 제자들이 있었다. 그 제자들이 너무나 훌륭하게 성장했기에 그 스승의 업적이 수 천년을 지나서도 떠받들어지고 있다.

소크라테스에게는 플라톤이라는 뛰어난 제자가 있었고 이 플라톤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이어진다.

플라톤의 <대화편>은 대부분 소크라테스의 생전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다. 소크라테스 본인은 직접 저술한 책이 없다. 읽다가 보니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플라톤이 그 자리에서 받아 적은 것일까, 아니면 재판의 기록이 남아서 그것을 따로 적은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기억에 의지해서 플라톤 자신의 사상을 마치 소크라테스의 말인 것처럼 첨언하여 쓴 것일까?'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399년에 불경죄 그리고 청년들을 부패시켰다는 죄목으로 고발되어 재판을 받는다. <소크라테스의 변명>('변명'이라는 어감이 부정적이라 하여 '변론'이라 번역한 책도 있다)은 그 재판에서 자신을 변론한 내용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소크라테스의 사상이 힌두교의 그것과 닮아 있음에 조금 놀랬다. 석가모니, 공자, 소크라테스는 사실 태어나 활동한 곳은 다르지만 비슷한 시기, 기원전 5세기 경에 업적을 남긴 분들이다. 우리가 지금 익힌 '인문'에 대한 것이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실 인도의 힌두교의 전신인 브라만교의 경전 <베다>를 가져온 사람들은 기원전 1500년 전의 인도유럽계의 아리아인들이니 소크라테스나 석가모니 시대보다 훨씬 이전에 문화적 교류나 영향이 있었을 것 같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 소크라테스는,

"오직 신만이 진정으로 지혜롭습니다. 그리고 신께서 우리에게 신탁을 주시는 이유도 인간의 지혜라는 것에는 가치가 거의 또는 전혀 없음을 보여주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말하는 것은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신의 지혜로써 그러한 것임을 얘기한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내게는 브라만교에서의 '범아일여'가 연상이 됩니다. 자신의 본성인 我 atman이 우주의 근본적 실재인 브라흐만(Brahman)가 하나가 된 상태인 것처럼 자신에게 신의 지혜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일러준다고 한다.

'진리'라고 하는 것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는 것일까? 아니면 고대의 어떤 사상들이 퍼져간 것일까?

예전에 협상이나 상담과 관련한 책들을 읽으면서 이 <대화편>을 권하는 내용들을 많이 보았다. 소크라테스가 상대들과 나누는 대화 방식들, 질문을 계속 던지며 상대로 하여금 스스로 논리의 오류를 알게끔 하는 방식들을 배우라는 내용들이었다.

특히 1차 변론 중에서 멜레토스와의 대화를 보면 소크라테스 본인의 의견을 주장하는 것보다 멜레토스에게 계속적으로 질문을 던지며 그의 주장에 오류가 있음을 배심원들에게 계속적으로 주지시킨다. 현대의 심리상담 혹은 협상에서도 이런 식의 기술을 많이 얘기하고 있다. 중국인들의 협상 기술은 <논어>, <맹자> 등에서 나오고 서양의 협상 기술은 <대화편>에서 나온다고나 할까.

1차 변론을 하고 나서 그는 배심원들에 의해 '유죄'를 선고 받는다. 그리고 본인의 형량에 대해서 정하기 위해 2차 변론을 한다. 하지만-다들 아시다시피-결국 사형을 선고받게 된다.

그리고 그는 3차 변론을 하며 말한다. 죽음이 좋은 일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며 자신의 죽음에 담담하게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맺음한다.

 

이제는 떠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는 죽기 위해 떠나고, 여러분은 살기 위해 떠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나은 곳을 향해 가고 있는지는 오직 신神 외에는 아무도 모릅니다.